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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외출

​종이학

-살인청부업자 해일과 어렸던 철범

 

 

동짓날만 다가오면 철범은 김해일을 떠올렸다.

자신의 첫사랑과 온 청춘을 가져간 사람. 철범은 김해일이 꼭 동짓날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절기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다는.

김해일이 꼭 그러했다. 까마득한 예전에 아저씨는 꼭 동짓날 같어요,

그러자 킬킬 웃었던 김해일.

 

황철범은 어릴 적 여수 시골 마을 큰 마당 집주인 할머니 손에 거두어졌다.

여 일 좀 봐주기로 해서 잠시 같이 지내게 되었다, 하시며 철범이 이팔청춘일 적에 할머니는 김해일이라는 사람을 들였다.

고삐리 시절 황철범의 눈에는 김해일이 퍽 할 일 없는 백수로 보였다.

낮에는 잠을 잤고 철범이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올 시간 즈음에 비적비적 돌아다녔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여?”

 

하는 철범의 물음이 있고 나서야 자기는 김해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가 몇 살이고 무슨 일을 하며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철범아 과일 먹어, 하면서 과일을 방으로 내어 주기도 하고 지나가는 어르신들께 살갑게 말도 붙였다.

철범이 수학의 정석에 머리를 박고 있을 때, 마침 과일 먹으라며 들어온 김해일에게 알려줄 수 있느냐 물어본 적이 있다. 거기서 김해일은 멋쩍게 웃으며

 

“미안, 나 고등학교 안 나왔어.”

 

라고 했다. 어색한 정적에 철범은 아... 하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철범은 김해일이 궁금했다. 그의 현재도 지금 잘 모르는데 과거를 알 리가 없었다.

한가한 주말 거실 바닥에 엎드려 티비를 돌려보고 있는 해일에게 철범은 같이 먹자며 과자 봉지를 내밀었고 철범의 손에는 영어단어장이, 해일의 손에는 과자 봉지가 들렸다.

달랑거리는 얇은 발목에는 커다랗고 징그러운 흉들이 있었다.

 

“아저씨 공사장에서 일혀요?”

“아니? 왜?”

“흉터가 많으시길래”

 

철범의 말에 김해일은 왔다 갔다 거리는 다리를 멈췄다.

 

*

 

김해일은 항상 살짝 긴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이마에 내리고 어디서 주운 것 같은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녔다. 그것이 김해일의 평소인데. 그것이 김해일인데.

담벼락에 기대고 서서 입김과 같이 담배 연기를 마셨다 내뱉는 그 사람은.

머리를 왁스로 올리고 구두에 가죽장갑에 긴 코트와 가방까지 온통 검게 한 김해일이었다.

공부방에서 잠들어 새벽에 급히 집으로 돌아오던 황철범은 속으로 자신이 잠에서 덜 깼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겠지, 했다. 아니다. 김해일이다. 처음 보는 김해일이다.

 

“늦네.”

“....아저씨 맞어요?”

“왜?”

“맨날 백수마냥 있다가 용케 사람다워 보여서.”

 

그러니 김해일은 담배를 비벼 끄며 피식 웃었다.

그날 뒤로 황철범은 자꾸만 머릿속에 김해일의 검은 모습을 떠올렸다.

마을 누구도 그의 그런 모습을 못 보았겠지. 내가 처음 보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 어딘가가 간지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그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둠처럼 하고서는.

그는 아주 아주 늦은 시간에 소리 없이 나갔다가 소리 없이 다시 들어왔다.

철범은 그런 김해일의 모습을 보겠다고 안 자고 버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깜빡 잠이 들어서 김해일의 외출 유무를 확인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굳게 닫힌 김해일의 방은 마치 금단의 영역과 같이 들어가선 안 될 것 같았다.

 

*

 

황철범은 나이도 모르는 김해일을 마음에 품었다.

치기 어린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고 황철범은 해가 뜨기 바로 직전, 가장 어둡다는 그 이른 시간에 일어나 김해일을 마중 나가는 날이 늘었다.

처음에는 무슨 고등학생이 이 시간에 무슨 대단한 사람 보러 일어나냐며 무어라 했지만 나중에는 기다렸어? 들어가자, 하고 무슨 애인마냥 달콤한 말을 했다.

캄캄한 새벽 말없이 마을 어귀부터 집까지 같이 걸어가는 일이 황철범에게는 살면서 가장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칙칙거리면서 라이터를 키고 담배를 피우는 김해일 옆에 서서 물었다.

 

“피면 뭣이 좋아요?”

“궁금해?”

 

김해일이 대답하자마자 황철범은 김해일의 입술을 삼켰다.

쓴 연기가 들어와 인상이 쓰여도 가만히 대고 있는 모습에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김해일은 황철범의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황철범은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터질 것처럼 붉어져선 좋다고 헤헤 웃었다. 황철범이 얼마 뒤면 스무 살이 될 시기였다.

 

*

 

“아저씨, 내가 스무 살 되면 나랑 연애혀요.”

 

하는 황철범의 당돌한 말에 김해일은

 

“철범아,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내가 좋으면 된 거지.

하고 삐죽거리는 황철범의 말에 김해일은 알았다며 웃었다.

 

열아홉의 12월이 되고 나서부터는 황철범은 신이 났다.

저 아저씨와 당당하게 부끄러운 짓들을 할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너 내가 몇 살인 줄 알고 그러냐”

 

하는 김해일의 물음에 황철범은 그저 상관없다며 낄낄거렸다.

김해일이 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그 때 12월이 되고 나서부터는 내년에는 나도 같이 가자고 황철범이 졸라댔다.

 

“무슨, 공부나 해.”

“수능도 끝났는디 공부여 무슨”

“..그래?”

“그라고 담년도 부터는 우리 연인 사이 되는거잖어요”

“그런 거야?”

“아 맞잖어요 받아줬음서.”

맞어요 아니어요?? 하고 댐비는 철범에게 김해일은 맞아, 맞다고!

하면서 옆구리 쑤시는 황철범 손을 간지럽다고 피했다.

 

“좀 있음 동지라고 팥죽먹겄네.”

“동지?”

“밤이 젤루다가 긴 날 있잖어요”

“아아 그거?”

“아저씨가 꼭 동짓날 같다.”

“왜?”

“그냥, 아저씨는 낮보단 밤이 더 긴 사람이잖어요”

 

그리고 해일은 웃었다.

담날이 동지라고 온 동네가 팥죽을 쑤어댔던 날 밤,

황철범은 밤 외출을 하고 돌아올 김해일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늘은 좀 늦네, 하는 생각에 좀 더 마을 입구 쪽으로 내려갔을 때 김해일을 마주쳤다,

여기저기 찢어진 피투성이 김해일을.

황철범은 그런 김해일을 업고 정신없이 달렸다.

김해일은 너무나 가벼워서 황철범은 그가 피를 너무 흘려서 가벼워진 건가,

하며 불안해했다.

황철범은 처음으로 김해일의 밤 외출에 의문을 품었다.

괴한이 돌아오던 김해일을 찌르고 갔을까? 이런 시골 마을에서?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라고 했던 김해일의 말이 귓가에 자꾸만 맴돈다.

 

당신은 무얼 하는 사람인가.

 

황철범은 피투성이 김해일이 눈을 꼭 감은 채로 산소마스크를 끼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긴 시간동안 생각했다. 핏기없이 눈을 감고 있는 김해일을 보다가 황철범은 집으로 달렸다.

김해일을 이제는 알아야겠다. 방문을 처음 열었고 미친 듯이 뒤졌고 종래에는 울었다.

 

*

 

나는 상관없다. 황철범은 상관이 없다. 김해일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내가 좋으면 되었으니 상관없다. 황철범은 생각했다. 자기가 왜 김해일의 방을 열 수 없었던 것인지.

자신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걸까. 김해일의 스치는 짐승과 같은 눈에,

가끔 풍기는 피비린내에. 그래도 상관없었다, 황철범은.

문득 드는 불안한 낌새에 병원으로 냅다 달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에는 우두커니 서있는 당황한 간호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김해일이 훌쩍 떠나버렸다.

병원과 동네를 한참 뒤지고 나서야 황철범은 김해일이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황망한 얼굴로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 캄캄해 자꾸만 휘청거렸다.

오늘이 동지라더니. 김해일은 자신과 꼭 닮은 날에 떠나버렸다.

그런 김해일이 황당스러워 황철범은 실성한 듯이 웃어댔다.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황철범은 그 이후로 어둠에 물들여 살았다.

어둠과 같이 떠돌다 보면 김해일을 만날 수 있을까하고.

오직 김해일을 찾으러 더 어둡고 더 캄캄한 일을 했다.

황철범은 김해일을 찾는 일에 자신의 온 청춘을 썼다.

철범이 그때의 김해일의 나이 언저리를 먹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흘러서 겉만 번지르르한 어떠한 곳의 사장이 되어서도, 높은 직위의 사람과 선 자리가 들어올 때면 황철범은 오랜 애인이 있다고 했다.

 

“애인은 어디있는데요?”

“모르지요, 나도.”

 

자기도 모른다는 철범의 대답에 이렇게 거절한다고 많은 이들이 기분 나빠했으나 철범은 진심이었다. 자신은 오랜 애인이 있다. 자기는 스무 살도 넘었고, 헤어지자 이별한 것도 아니니 아직 애인 사이가 맞다. 그런데 그 애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연락 닿기 힘든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고 철범은 그렇게 생각하려 노력 중이다.

동짓날만 가까워져 오면 동짓날에 떠나간 동짓날 같은 김해일이 더 그리웠다.

나는 괜찮다 혔는데. 뭣이 두려워서 그렇게 떠나버렸는지.

 

*

 

또다시 돌아온 동짓날, 김해일을 따라 온통 검은 것들로 치장을 하고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어떤 치가 와서 황철범의 단단한 뱃가죽을 쑤시고 도망갔다.

아마도 자신이 사업하다 짓누른 대가리의 부하일 것이리라.

철범은 뚝뚝 흐르는 피와 전신으로 번지는 고통에 주저앉았다.

 

이러니 진짜 내가 김해일이 된 것 같네, 하며 황철범은 어이가 없고 황당하여 피식거렸다.

골목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걸어가자니 피가 울컥 나와서 어지러웠다.

그날 밤에 김해일도 그랬을까?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황철범은 그 날 밤을 평생토록 후회했다.

그때 내가 집으로 뛰어가지 않았다면. 그래서 피투성이 김해일이 눈을 뜨는 것을 봤다면.

떠나가는 김해일을 붙잡았더라면.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고, 거듭하고 또 거듭하다보니 정신이 차츰 흐려졌다.

철범은 정신을 아주 놓기 전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온통 검은 실루엣을 보았다.

 

*

 

황철범은 옮겨지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누구지, 하는 생각을 한다.

아까 본 그 검은 것은 분명 김해일인데.

저승사자는 생애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타난다더니 그 말이 진짠가 봐.

하는 생각을 하기에는 안 돼, 안 돼, 하고 거친 숨소리와 함께 중얼거리는,

자신을 업고 달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분명 김해일이라서.

당신 진짜 김해일이야? 왜, 왜 이제야 왔어,

황철범은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정신이 너무나 흐릿하여 입이 열리지 않았다.

 

*

 

황철범이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눈을 떴을 때,

눈 한가득 보이는 걱정스러운 얼굴에 다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김해일이다. 김해일이 앞에 있다. 나를 보고 있다.

황철범은 이것이 꿈이면 깨지 않았으면 했고, 사후라면 천국이겠거니 했다.

큰 눈에 붉은끼와 눈물을 한가득 담고 바라보는 그리운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그리운 얼굴이 입을 열고 말한다.

 

“늦네.”

 

황철범은 그 한마디를 듣고 울음이 났다.

그를 찾으려 했던 수년 동안 듣고 싶었던 말.

철범이 일부러 그 여수 골목을 늦은 시간 돌아다니며 그가 나타나서 해주길 바랐던 말.

 

“.....김해일, 당신 맞아?”

 

아저씨 맞어요? 하고 물어왔던 어린 시절의 황철범이 생각나 김해일은 웃었다.

응, 나 맞아. 나야 철범아.

황철범은 찢긴 뱃가죽도 잊고 김해일을 와락 안았다.

찾았다, 내 첫사랑과 온 청춘을 가져간 사람.

어린 시절에 배웠던, 절기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다는 동짓날과 꼭 닮은 김해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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