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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애

​혜노

“용서...”

 

황 철범은 이 영준 신부가 제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용서와 김 해일이 신부로서 제게 행한 용서에 대해 생각했다. 이 영준 신부님은 저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어느 아버지가 자신을 내다버린 자식을 다시 품을 수 있겠느냐고, 그 단언 앞에 해일은 보속을 해줬었다. 이 신부님은 널 용서하실 거라고, 아니. 처음부터 원망하신 적이 없으니 사실 용서하고 말고도 없으실 거라고. 그 순간 철범은, ‘아, 나는 반드시 지옥에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 해일 신부님.”

 

“왜.”

 

“내가 하느님한테 가면 물어보고 싶은게 있거든요. 근데 도저히 나는 갈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말인데... 거, 신부님은 하느님 말씀 잘 아시니까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주는 것도 그쪽 마음이고, 도로 뺏어가는 것도 그쪽 마음이라고 하면 나한테는 왜 부모고 가족이고 안 주셨답니까?”

 

“......”

 

“신부님한테는요?”

 

해일은 의아함과 당혹스러움에 철범을 바로 보았다. 황 철범이 가족을 갈망한 적이 있던가? 아니, 설령 그런 적이 있다고 한들 황 철범이 이런 질문을 할 위인이던가? 그리고 해일은 곧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주 오랜 밤이 끝나고 어스름한 새벽과 아침을 맞는 때라면, 그러니까 황 철범이 비로소 죄책감과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게 된 것이라면... 스스로 행한 일과 가지지 못한 것을 이어붙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까진 나도 모르지. 왜 너나 나한테 가족이나 부모같은 걸 주지 않으셨는지. 모르지만 뭐, 없어도 그런대로 잘 살지 않았냐.”

 

“신부님은 안 궁금합니까, 부모 얼굴들.”

 

지금 황 철범은 어린아이가 어떤 의도 없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쏟아내는 듯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뒤늦게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수없이 사죄해봐야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았으나, 과거 해일과 달리 철범은 무너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다만,

 

“궁금했지. 근데 궁금하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워한다고 나타나 줄 사람들도 아닌데 잊어야지, 어쩌겠어.”

 

철범은 길고 긴 밤이 끝남과 동시에 밀려드는 해일을 보았다. 죄책감에 쓸리고 깎여 세워진 낭떠러지 앞에 선 김 해일. 그 해일이 철범을 삼키려 하고 있었다. 철범은 기어이 그 해일에 휩쓸려 떠밀려 가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여겼다.

 

“김 해일.”

 

같은 아버지 밑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형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철범은 해일을 향해 순명의 성호를 그으며 두 번 다시 그 밤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해일아.”

 

해일은 나지막히 들려오는 제 이름에게서 어떤 온기같은 것을 느꼈다. 그 후로부터 흐르는 정적 속에는 오로지 평화만이 남아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잡아먹고, 우리를 우리로 존재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다시는, 두 사람 중 누구도 그 차디찬 밤을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신부 이름 함부로 부르는 거 아니다.”

 

“우리 신부님은 좋다는 표현을 참 특이하게 하시네.”

 

그때, 철범은 미묘하게 바뀌는 해일의 표정을 보았다. 해일이 어떤 말을 숨기기 위해 저런 말을 꺼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행복하다니, 그 황 철범 앞에서. 황 철범이 제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 평화를 느끼다니.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듯한 감정을 삼키며 고백처럼 맴도는 말을 한구석에 밀어넣고, 제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해일의 표정은 관찰력이 아주 좋은 남자 앞에 보여지고, 남자는 꽤나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해일아.”

 

“김 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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